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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 조지 오웰 저(著) 정희성 역(譯) 《1984》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은, 세계가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이스트 아시아라는 거대 전체주의 국가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는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당은 권력 유지를 위해 가상의 인물인 ‘빅 브라더’를 만듭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 욕구와 감정을 통제하는 약을 개발합니다.

주인공인 당원 윈스턴은 ‘현재를 지배한다.’는 당의 목표에 맞춰, 현재에 맞지 않는 과거를 끊임없이 조작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들어 빅 브라더가 미래의 일을 언급하고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나타난 괴리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종 문서, 신문, 서적, 녹음, 영화 등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작하고 바꿉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할 때, 객관적 역사란 불가능해지고 역사 왜곡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현재와 과거의 관계는, 마틴 부버의 용어로 말하면 ‘나와 너’ 또는 ‘나와 그것’의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나’를 위해 과거를 ‘그것’으로 취급하여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를 ‘그것’으로 보지 않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너’로 바라보며 의미를 부여할 때, 참다운 역사의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역사도, 사람도,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그것’으로 취급하여 이용하려는 사람은, 자신도 역사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출처 : 긴 생각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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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팅에서도 알려 드렸듯이. 교회라고 모두 천사표만 있는것이 아니며, 이제 첫 교회활동을 시작하시는 분들이나, 혹은 기존 성도님들 중에 여기에 대한 지식이 희박하여 몹시 힘들게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위한 몇 가지 팁을 나누려고 합니다. 시무하고 계신 목회자분의 영성 및 성경관이 확실하다는 가정하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일이 없어야 하듯 몇 몇 안 좋은 상황과 인물들 때문에 감정이 앞선 나머지, 교회를 등지는 어리석은 일들은 더욱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나르시시즘에 휩싸여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을 주의할 것 -


모두가 신앙하는 이가 1순위가 아닌 자기 자신의 우상에 사로잡혀 현재 진행형도 아닌, 과거에 몇 번 우연이 체험한 몇 가지 영적 체험을 근거 삼아 잘못되고 그릇된 신념을 토대로 교회 내에서 여럿 이들에게 말로써 혹은 행동으로 근심과 해를 끼치는 타입이기도 합니다. 본인들 말로는 절대적으로 주를 신앙한다고는 한다지만, 그 실상은 늘 변함이 없으며, 도리어 자신이 행하고 있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을 몇 가지 성경 구절들을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상황에 짜 맞추어 가며 스스로를 정당화함은 물론, 여기에 더해 이러한 일들을 그 분의 은혜이자 자신을 들어 쓰는 일종의 회초리라는 잘못된 혼적 사상에 휩싸여 있는 부류도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 활동을 하실 때 주변에 이러한 분들이 계신다면 되도록 대화도 하지 말 것을 권해 드리는 바 입니다. 다만 권고를 강하게 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질책을 하는것은 절대 죄가 아니니 담대 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가 과거 다닌 교회 중 어떤 곳은 성도가 화를 단 한번이라도 내는것 조차 큰 죄악이라고 단정 짓는 그런 곳도 있었습니다. 이 역시 성경에 대한 지식부재가 낳은 결과이기도 한답니다.




- 영적 현상이라고 다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


위에 글에 기재된 내용과는 반대로 과거형에 머물어 있는 단계가 아닌 현재까지 진행형으로써 영적 현상들을 직접 사물을 보듯이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많은분들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있는데요. 이러한 영적 현상들을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것에서 많은 문제들이 비롯된다는 점. 이러한 현상들은 비신앙인들이나, 혹은 다른 영을 섬기는 이들 사이에서도 다분이 있는 일이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분별력을 강화시켜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들이 잘못된 쪽으로 사로잡혀 일으키는 문제점들은 위의 사항들보다 더 큰 문제들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이 있으므로 교직자 분들이나 목회자분이 직접 발벗고 나서야 할 중대적인 사항이기도 하답니다. 교회의 여러 질서를 무시해 가면서 개별적으로 예언을 해주겠다던지, 혹은 금전적 요구를 하는것과 더불어 계시를 받았다며 협박성 발언을 하며 그러한 자기자신을 과시하려는 조짐이 보일 때, 주의 은혜안에 있는 성도로써 그러한 두려움에 절대 굴하지 마시고 이러한 분들과의 관계를 조용히 끊음과 동시에 다니고 있는 교회의 담당 목회자님이나 소속 교직원 분들께 해당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 하시길 바랍니다. 도저히 통제가 안되는 경우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는 구절도 존재한다는 사실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 적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분의 영성의 분량에 따라 교회가 부흥하는 정도와 성령의 역사의 정도가 결정되며, 이 역시 각 개인의 노고와 그 어떤 수고가 아닌, 오로지 성령의 은혜만으로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답니다. 특정 어떠한 곳의 교회를 섬기는 성도님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우는데요.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싶어 출석한 경우와, 은사를 받은 특정 인물들이 성신의 지시를 받아 머무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 교회를 떠나야 될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에게 있음을 먼저 알려드리는 바 입니다. 이어 그럴 일이 없어야 겠다지만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많은 실수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목회자가 성신께 받은 은혜의 분량을 이로써도 어느정도 측량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목회자는 섬김의 대상이지 신앙하는 대상이 아님을 혼동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번복 적인 실수는 결국 고의일 것이며, 그것에 대한 잘못들을 인정하는 단계는 이미 벗어나, 그것들에 대해 첫 번째 글들에서 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 몇 구절들을 인용하여 목회자 자신의 상황에 짜 맞추어 정당화 및 합리화를 하는 좋지 않은 결과들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대한민국에 한창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60-70 년대에 비해서 많이 근절됐다하지만 요즈음에도 이러한 잔재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의 경우 과거 이러한 문제를 지닌 목회자가 계신곳의 교회에 위의 문제들을 지닌 분들의 잘못됨을 인지하지 못한 나머지 그러한 잘못들에 대해 관대하게 넘어가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습니다. 결국 목회자의 영적 무능함은 고스란히 성도들의 몫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 보상심리 -


사회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교회내에서도 매우 불필요할 정도로 텃세를 부리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지요? 이러한 분들의 대부분은 해당 교회를 개척 초기나 오래 다닌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그러한 행위들에 대한 근절을 하지 못하는 교회의 특징은 부흥이 되질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이들에 비해 부흥이 유독 안되는 교회에 계신다면 이 점부터 확인 해보시길 바랍니다. 포도밭의 여우는 제 아무리 포도밭을 일구기 이전부터 그곳의 터줏 대감마냥 지내왔다 하지만, 농사에 전혀 이익이 없으므로 반드시 내어 쫓아야만 농사를 망치지 않게 되는 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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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신앙을 가진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언제 그칠지 모르게 끊임없는 혹은 불필요하다의 단계를 넘어 심히 위험하다 여길 정도의 지나친 기술의 발전과정은 마치 고대 바벨탑 사건을 연사에 하며, 수 많은 질병의 압박과 고통, 기근 가난, 전쟁의 수난.. 이러한 일들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현재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작은 지구안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유인 즉슨 지구상 어느곳이든 파라다이스는 마치 없는거 같습니다.




- 신앙생활은 홀로 도 닦는 것이 아닌 단체 그 자체이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위의 현실을 잠재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어 의지하려는 대상이나 단체를 찾게 되는게요. 그것이 결혼일 수도 있고,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가 될 수도 있으며, 돈이 될 수도 있고 직업이나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필자가 여기는 교회라는 영역에 대해 조졸하게나마 다루고자 합니다.

사회의 여러 단체 활동들이 오늘날 교회안 구성체의 모티브라고 봐야 하며. 우리가 사회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헤어짐을 반복하듯이, 교회도 이러하며, 각자의 삶의 방식과 성격에 아우러 또한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고자 서로 교제도 하며, 다투기도 하고, 힘들지만 서로 맞춰 가는것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사회라는 구성원은 성경의 가르침대신 "신념" 이라는 틀에 기준을 둡니다.]



- 교회라고 다 천사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신자가 된 분이나 혹은 기존 신도분들중 같은 교인에게 심한 마음의 상처나, 혹은 재정적 피해를 입고 교회를 등지거나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를 준 쪽의 경우가 물론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대해 어떻게 처신한 쪽도 무엇이 문제였는가 한 번쯤 되돌아보는것도 중요하다고 조심스레 여기는 바 입니다. 성경에 의한다면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라 합니다. [여기서 뜻하는 죄인이란 기준은 우리가 사회에서 바라보는 그런 죄인의 기준이 아닙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모이지, 사지가 멀쩡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 경우랑 같듯,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이는 사람들은 창세기때에 죄의 유혹을 억누르지 못해 범죄한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이,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았다지만, 자범죄라는 평생의 유혹거리는 언제 어디서든 늘 붙어 다니기에, 개개인이 이것을 얼마나 억제하며, 또한 다스릴 수 있느냐의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할 수가 있습니다.[목회자의 클래스를 가장 중요한 성경관 다음으로 이로 또한 정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창한 토론대회 그런게 기준이 되어선 아니됩니다.] 그렇기에 회당내에서 상대에 대해 너무 신뢰한 나머지, 분수에 지나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됩니다. 교회내 공동체 모임에서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온화한 분위기에 너무 마음을 놓은 나머지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 대해 불필요하게 발언할 필요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칫 이후 당신에게 상처로 되 돌아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교직자가 아닌 이상, 사회생활과 겸하여 신앙생활을 하기에 어디까지나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죠. [신뢰와 믿음 이 두가지를 혼동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 YES! NO! 를 분명히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인과 개인간 그 어떤 불합당한 상황에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보증을 써달라던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강권적 투자권유, 교회의 계획과는 반대의 쪽으로의스카웃 제의라던지, 등을 들수있으며,  목회자, 혹은 교회단체에서 행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세운다면 그 교회에서 나와야 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물론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어서는 아니되겠죠? 휘둘리지 않으려면 성경을 많이 또한 알아야 합니다. 이는 사회에서 불의한 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법률정보를 많이 알아두는것과 같은 이치죠.



- 내 로 남 불 -


이 공식이 교회안에서 있지 않기를 바라건만 아쉽게도 존재한답니다.

교인중 누군가 교리 , 혹은 성경에 걸맞지 않는 일을 하다 드러났을때. 위로는 커녕 열심히 정죄하느라 분주한 신도들도 존재하기 마련인데요. 이는 신약성경에 늘 예수님과 제자들을 미행하고 따라 다니면서 정죄하고 지적하느라 분주했었던 바리세인들과 율법사들의 같은 예라고 봅시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시자 승리자이시며, 모든 논리의 제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향해 내로남불의 뜻으로 강하게 경고하신 구절이 있답니다.[이래서 필자는 예수가 좋습니다.] 자신들은 안그런다고 절대! 확신한다지만, 결국 정죄한 본인들이 그러한 행위에 더 익숙해져 있거나, 혹은 더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공의가 아닌, 내 심기에 근거한 판단, 혹은 정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에 동참할 이유는 더욱이 없는 것이고요. 당신이 누군가를 붙잡고 남을 헐뜯어봤자 결국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당신을 속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련 구절 역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죄에 주늑들지 마세요. 그 누가 뭐라하든 당신이 예수를 믿고 신앙한다면 당신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 범위내에 충실한 신앙인이 되길 필자는 소망드리는 바 입니다. 마음의 꾸미지 않는 있는 당신의 순수한 모습으로 교회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문제가 있다면 경우와 상황에 따라 그것을 내 스스로 해결하려고 마시고 내 할 도리를 해가면서 그것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이로울 것이며, 또한 예수가 원하는 바 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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